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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건가?' 레이센은 초보를 위한 아무런 아이템도 마련해놓지 않았다. 초보용 아이템이 있긴 하지만 아무 노력도 없이 주어지는 것은 없었다. 터벅. 터벅.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다. 그렇지만 천성이 밝은 덕분에 인상까지 찌푸리지는 않았다. 약간 기분이 다운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에 실망할 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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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하나하나 배워보자." 일단 내가 한 일은 화면 구석에 있는 여러 가지 아이콘들을 하나하나 눌러보는 것이었다. "게임에서 뭔 빨래를......" 난 황당한 현실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아주머니는 양볼에 심술이 가득 담겨있는 얼굴이었다. 보통 유저가 심술이 가득한 얼굴에 빨래를 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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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개울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어서 지나가는데 문제는 없었다. "아... 아줌마! 퀘스트! 퀘스트있으면 주세요!" 난 은연중에 NPC를 진정시키려고 퀘스트를 말했다. 그러자 헬렌아줌마는 손을 내리고 날 빤히 쳐다봤다.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숨을 크게 몰아쉬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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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배낭모양의 아이콘을 만졌다. "정모야. 그런데 몸은 좀 괜찮으냐? 병원에서 조금 쉬라고 했다며." "저 놈이 병원에서 하는 말 듣는 거 봤냐?" 질문은 민용이라는 녀석이 했고 나를 대신해 대답한 친구는 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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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사운드와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레이센의 세계.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완벽한 그래픽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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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무기가 없네." 다른 유저들은 모두 자신이 사용하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창, 검, 철퇴, 클러, 너클. 지팡이, 마법서, 구슬, 도 등등 가지각색의 무기가 눈을 어지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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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내다. 민용이." "웬일이냐? 한참 일할 시간에." "현로하고 나, 일 그만뒀다." "미쳤구나. 이것들이." 익희는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나 역시 내일부터 일을 나갈 예정인데 민용이와 현로까지 일을 그만뒀으니 세영이까지 포함하면 친구들 모두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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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밝은 희망이 될 거야." 스스로를 초보라 인정한 나는 그때부터 한 시간 정도를 입구사냥터에서 보냈다. 난 에너지의 하락을 막기 위해 주먹공격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몬스터가 보이면 슬며시 다가가서 무조건 목을 물어뜯었다. 많은 유저들이 그런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난 꿋꿋이 참아내며 밝은 내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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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내가 주먹은 좀 쌔지.' 하지만 레이센의 세계는 초보에게 그리 만만한 게임이 아니었다. 무협세계를 선택하면 캐릭터에 내공, 외공, 운기행공, 정신력등 다른 스텟이 있다지만 난 판타지 세계를 선택했으니 해당되지 않았다. 현재 내가 선택한 캐릭터는 레이센에서 가장 단순한 스텟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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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잉? 너 일안하나?" "일 그만뒀다." "쿠하하하하하!" 친구가 실직했다는 소리에 웃음이 터졌다. 친구의 아픔을 이렇게 기뻐해서는 안 되지만 왠지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우리가 친한 친구라지만 이렇게 한날한시에 백수가 되다니 우연치곤 꽤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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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터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사람 머리만한 거북이와 개구리, 메뚜기, 고양이 등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토끼를 잡아라! 레이센 입문 둘째날. 난 주섬주섬 아침을 챙겨먹고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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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관심을 끈 것은 퀘스트창이었다. 원래부터 게임을 좋아했던 녀석들은 결국 레이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녀석들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맞춰진다면 게임아이템으로 돈을 벌 계획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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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농담과 서로에게 장난을 치던 우리는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조금씩 진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녀석의 말투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프로레슬러들의 흉내였다. 2000년대 후반에 사라져버린 프로레슬링은 최근에 들어서 마니아들에 의해 다시 붐이 일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하던 나와 친구들은 프로레슬링을 좋아했고 이렇게 말끝에 '맨'자를 붙이며 어설픈 흉내를 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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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집에서 기다리마." "그려." 난 익희와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지나는 길은 빼곡한 아파트단지였다. 한 가구당 13평 정도로 나누어진 미혼자아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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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띠.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데미지를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무기를 사용할 경우 해당 무기와 연결되는 스텟이 경험치에 의해 상승하게 됩니다.] 도움말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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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간다!" 빡! 난 거북이의 툭 튀어나온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경쾌한 타격음이 들려오자 마음까지 시원해졌다. '일단 걷는데 익숙해질 겸 한번 뛰어볼까.' 게임 자체가 신기하게 다가온 나는 미친놈처럼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뛰는데 익숙해진다는 명목이었지만 분수대를 놓고 빙글빙글 도는 나를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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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도 이런 메시지를 들었는데 그 때는 사냥에 정신이 팔려 미쳐 신경 쓰지 못했다. 난 급히 캐릭터 창을 열었다. 그러자 1이었던 레벨이 4로 바뀌어있었다. 따라서 10이었던 에너지도 40으로 변해있었다. 반면 기력은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다. 10이었던 기력이 3레벨이 올랐음에도 19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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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익희는 뭘 하려나.' 이왕 잘린 마당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해고를 당하는 것도 면역이 되는지 이제는 담담했다. 난 집으로 걸어가면서 휴대전화기를 들었다. 얼마 전, 한달 월급을 모두 투자해서 산 최신형 모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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