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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참동안 서로 공격을 주고받던 그들은 순간 걸음을 뒤로 옮기며 자세를 낮추었다.
"훗. 하지만 그 동안 내가 없었으니까 편했을 테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어쨌든 불쌍하게 됐구나 우리 단원들. 어쩌다 너 같은 녀석이 단장이 되어 갖고."
그의 말을 들으며 시리안은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나직이 한 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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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 그의 발자국이 새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는 오두막집에 가까워져갔다. 어느 새
하늘은 까마득히 어두워져 있었고, 그 사이로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술을 마시러 오신 것 같은데 괜찮다면 같이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음유시인의 이런 말에 시리안과 지에트닌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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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었다. 그가 잠에 들었을 때야 거
실로 나가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흘리는 그녀,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자신에게 걱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 웃음을 보여주었던 그녀……. 그런 그녀를 위해 자신은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가 오늘 이 묘비에 묻힐 때까지 위로해주고, 울고 싶지만 애써 웃음을 보
여주는 것밖에 자신은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질책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녀의 묘비 앞에서.
그렇게 한참동안 눈을 맞으며 멍하니 서있던 그는 순간 그녀의 묘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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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대련진영으로!!"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사단원들은 재빨리 흩어지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원형
의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원은 처음에는 비록 작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커지
더니 이윽고 지름이 100m에 될 정도로 거대해졌다. 그리고 원의 중앙에는 시리안과 지에트
닌 두 사람만이 남았다.
부천오피우선 하급 마물은 남에게 기생하여 그 생기를 빨아들여 크기와 힘을 늘려 나가는 것이 대
부분이다. 그들은 크기도 작고 형태도 단순하며 초반에는 힘이 없지만 교묘한 말재주로 다
른 생명체를 꼬셔서 그 힘을 빨아들이고, 그게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때로는 중급 마물의
힘을 갖추기도 한다. 물론 그 한계가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힘을 빨아들인다 한들 그리 강
한 힘을 갖추지는 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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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안은 지금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듯 하지만 그는 사실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저 눈
만 감은 채 에리셀……그녀와 함께 보냈던 나날들을 생각하며 끊임없이 슬퍼했을 뿐…….
그것은 그의 눈물로 인해 젖어버린 이불과 베개만 보아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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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텐데 그냥 누워서 들어……."
"하나 뿐인 친구를 누워서 맞이할 수야 없지……."
그는 애써 웃음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몸을 일으켜 그와 마주보았다. 그를 바라보며
지에트닌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몇 일만에 본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도 훨씬 수
척해져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기색을 보며 시리안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
다. 하지만 그 미소에는 전혀 생기가 들어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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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 내내를 그녀의 묘비 앞에서 지새고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나도 오
래 무릎을 꿇고 있었던 탓인지 다리에 찌릿찌릿하고 무거운 느낌이 다리를 타고 전해져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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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 곳이 남았어……. 잡화점. 그녀의 사진을 보관할 펜던트가 필요하거든."
이 말에 지에트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를 아쉬운 기분이 스며들어와 지에트
닌에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잡화점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그는 생각했
다. '너에게 앞으로 밝고 생기 있는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그녀밖에 없겠구나.'라
고…….
<라운파이터> 1-2화. 생기 있는 웃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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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잡화점의 내부 배경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옛 가구부터 서양
의 인형까지 여러 가지들이 있었지만 시리안은 그런 것들에게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은 채
들어오자마자 연륜이 꽤 있어 보이는 잡화점 주인에게 다가가 한 마디 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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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두 사람의 긴 머리칼이 흩날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조금 긴장
감이 어린 미소를 얼굴에 띄우고 있었다.
"나 지에트닌 부단장은 시리안 단장에게 졌음을 인정합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적에 쌓여있던 주변은 곧 이어 터지는 기사단원들의 함성으로
인해 시끌벅적해져버렸다. 그런 와중에 시리안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 얼굴에 살짝 웃
음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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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닌……? 왜 그래? 안색이 안 좋다."
펜던트를 집어넣고는 고개를 들어 지에트닌을 바라보며 시리안은 물었다. 시리안의 말대로
그의 얼굴에는 왠지 모르게 흑빛이 어려져 있었다. 갑작스런 시리안의 말에 그는 씁쓸한 미
소를 얼굴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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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가봐야겠군.'
새벽 5시의 이른 시각 시리안은 꿈에서 깨어난 뒤 이렇게 생각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는 자
신의 숙소 방문을 열고 나와 왕성 안을 걸었다.
"아 그만 깜빡했군요. 마물의 종류에 대한 책을 보러 왔습니다."
"에 그건……F열 105번째 책장 열에서 위에서부터 4번째 칸에 그에 대한 책들이 놓여져
있을 겁니다."
"역시 그 기억력은 여전하시군요. 다음 번에 만나면 술을 먹으며 얘기 좀 나누지요. 왠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말입니다."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그 때까지 제 목숨이 붙어있기만 한다면 얘기 상대가 되어드리
죠."
"하하 그럼 최대한 빨리 찾아뵈어야겠군요. 즐거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시리안은 이 말을 끝으로 걸음을 돌려 책을 찾기 시작했다. 40m정도 걸음을 내딛을 때마
다 바닥에 새겨진 A열,B열 이란 대형 문자와 그 옆에 붙어있는 책장의 열을 표시한 숫자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F열이란 글자와 100-110이란 책장의 열이 그의 눈
에 왔을 때 그는 걸음을 돌려 책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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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안은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서 잠시동안 마족과 계약하며 미소짓는 모습으로
사라져갔을 그를 생각하며 속으로 그가 꼭 주신에게서 새로운 영혼을 부여받아 환생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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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지에트닌은 전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시리안의 숙소로 걸음을 내딛었다.
"뭐 상관없잖아. 우리 정도면 웬만한 상급 마족 정도는 처리 할 수 있다고. 그런데 뭐 걱정
할게 있겠냐."
그에 시리안 역시 덩달아 얼굴에 웃음기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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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소리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곳은 왕의 숙소인
왕실 문 앞이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에 지에트닌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문에 자신의 귀
를 가까이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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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무나도 아름다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서 그는 뚜껑을 닿고는 그 펜던트를 품안에 집어넣었다. 목에 걸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도둑이 달라붙을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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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걸음을 내딛는 속도가 빨라졌다. 잠시나마 그녀의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
것은 그녀를 잊고 싶어서가 아닌 앞으로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야할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
이었다. 앞으로 나아가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의 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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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는데……그 뿐이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엇갈려버린 건
지…….'
그는 멍한 얼굴로 걸음을 내딛으며 이런 생각을 하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 괴로울 뿐인데도 왜 자꾸 그녀가 어렴풋이 머리에 아른거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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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음유시인은 곧 무대에서 내려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
에 서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연주를 듣고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나쁘기 마련인데 그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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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늘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리셀……. 그녀를 위해서라도 저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그런 그들의 뒤로 '끼이익'하며 조용하게 도서관의 문이 닫혔다. 마치 두 사람의 운명을 예
시라도 하듯이.
<라운파이터> 1-5화. 전쟁 하루 전
두 사람은 곧 훈련 소집 장소에 도착해 인원을 점검했다. 그리고 곧 훈련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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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잔재가 남은 것인지 하늘에서는 아직도 약간의 눈이 내려오고 있었다. 크게 울고
나면 약간의 이슬이 눈가에 맺히듯이 말이다. 그 미약하고도 얇은 눈들은 대지를 향해 떨어
지며 나무에 내려앉기도, 땅에 쌓인 눈들과 합체하기도 하며 조금이나마 생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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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묘비의 주인은 그가 가장 사랑하던 아내였다. 자신의 보잘것없는 목숨보다도 사랑했던
그녀의 묘비…….
그녀는 병을 앓고 있었다. 그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는 유명한 의사들이란 의사는 모두
수소문해보았으나 절망스럽게도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
다. 조금이나마 치료할 방법을 아는 의사조차도……. 그저 다들 고개를 흔들고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포커사이트추천마지막으로 최상급에 해당하는 마물이 단 한 가지 있다. '엘크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 몸
의 크기와 형태는 언뜻 보면 인간계의 드래곤과 비슷하나 피부가 비늘로 덮여져 있는 게 아
니라 하얀 털로 덮여져있어 언뜻 보면 귀엽게도 보인다. 이들은 얼굴의 형태가 동그랗고 그
윗 부분에는 뿔이 두 개가 달려있다. 보통 때는 온순하여 가만히 보면 하얀 색의 커다랗고
귀여운 곰 같지만 화가 나서 마나를 개방하면 그 모습이 드래곤과 비슷한 형태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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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파이터> 1-4화. 도서관에서
왕성으로 돌아온 뒤 시리안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웬일인지 평소보다 일찍 자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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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초상화를 손으로 잡고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지냈을 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그
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가 아플 때 자신에게 초상화 하나라도 남겨주고 싶다며
화가에게 찾아갔던 일, 분명 그 때만해도 그녀는 자신의 앞에서 이 초상화와 같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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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생물이 어떤 생물인지는 알아냈어?"
시리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지에트닌은 이렇게 물어왔다. 그에 시리안은 고개를 흔들었
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묘비에 새겨진 글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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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나누며 시리안은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었다. 수척한 얼굴에 쓸쓸한 듯 미소를 지
으며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는 그는 왠지 너무나도 안쓰럽게 보였다. 하얗게 변해버린 숲의
눈길 위를 걷는 그들의 머리카락이 순간 싸늘한 겨울바람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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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파이터> 1-2화. 생기 있는 웃음(2)
"큭큭큭큭큭……."
시리안은 한 손을 이마에 짚고 이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비록 그 웃음소리는 괴이해 보
였지만 슬픔이 가득 차있는 그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낼 수 없을만한 웃음소리였다.
바둑이사이트금화 1닢은 1만 지른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100평 정도의 아주 작은 농장 하나 살 수 있을
정도의 돈……1식구가 배불리 2달 정도는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그 1닢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생명보다 갚진 것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 1닢만은 받아주십시오. 그냥 받기엔 제가 껄끄럽습니다."
받기 전까지는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그의 기세에 결국 주인은 어쩔 수 없이
1닢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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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련에는 너도 동참이다."
그 말에 지에트닌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시리안을 바라보았다.
'이…이런.'
그는 순간 허리를 뒤로 눕혔다. 그의 코를 타고 시리안의 주먹이 가까스로 빗겨갔다. 주먹
이 스쳐지나가면서 느껴진 거센 바람이 지에트닌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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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잘됐지 뭐. 이렇게 라도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내 마음이 편해질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서 시리안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를 바라보는 술집 안의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좋지가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다. 이벤트의 분위기를 망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을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리안은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프를 다룰 줄
몰랐기 때문에 그저 두 손을 모아 배에 얹은 뒤 시를 낭송했다. 곧 그의 입을 타고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청명하고 또한 아름다웠지만 흐느낌이 가득한……그런 목소리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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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순간 얘기를 듣고 있던 지에트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의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곧 지에트닌은 재빠르게 걸음을 내딛어 그곳을 벗어났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몸을 약간 휘청휘청 거리며 지에트닌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
가 침대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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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이 남문의 입구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점차
흘러가도 그곳에서 움직일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
고 그들은 그곳에 꿋꿋이 서서 버틸 뿐이었다.
한참을 걸어서야 그는 시리안이 묵고있는 집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문을 열기 위해 손
잡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잡이의 바로 앞에서 움직이
던 손을 멈추었다.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표정 또한 무엇인가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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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각'하는 기괴한 음향과 함께 오크의 몸통이 터져 나갔다. 초록색 핏줄기와 함께 살과 뼈
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눈깔을 하얗게 뒤집은 채 바닥에 엎어져있는 오크의 모습
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의 수명은 무한대이지만 드래곤과 같이 나이가 먹을수록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이가 어느 정도 되면 변신을 하는데 그 때마다 힘이 강해진다. 변신에는 2차 변신까지가
있고 2차 변신에 이르면 에인션트 드래곤 이상의 힘을 발휘하여 상급 마족들조차 그들을 건
드릴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번식 여부가 까다롭기 때문에 그리 많은 숫자가 존재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약 10마리의 엘크리아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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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아마도 괴로워하고 있겠지. 그렇게나 사랑한 그녀를 잃었으니 당연할 테지만 나
는 그를 지금 꼭 만나야한다. 마음 같아서는……마음 같아서는 그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내버려두고 싶지만 문제는 앞으로 한달 후쯤이면 있을 트로센과의 전쟁……. 단장인 그가
언제까지나 그녀를 잃은 슬픔에 얽매여 단장으로써 그 구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전쟁
에서 우리 기사단은 패할 것이 분명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지금 꼭 그를 만나야 한다. 위로
든 뭐든 한시라도 그가 빨리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나는 해야만 한다. 그것이 친구이자
부단장으로써 나의 의무이다…….'
오랜 시간을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손잡이를 열었다. 그러자 '끼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
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시리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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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리가……. 그렇다면 그 생물은 마물이 아닌 다른 생물이란 말인가?…….'
"시리안 여기서 뭐해? 이제 3시간 후면 훈련 소집 시간이라고. 단장인 네가 미리 집합 장
소에 나가있어야지. 응? 너 왠지 안색이 안 좋다. 무슨 일 있어?……."
언제 나타났는지 시리안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지에트닌은 이렇게 말했다. 고민에 정신이
팔려있던 시리안은 그에 갑자기 어깨에 전해져오는 충격을 느끼며 한 순간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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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이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 명의 인원이 각자 최대한의 크기로 발한 목소리가 하늘마저 찢어버릴 기세로 쩌렁쩌렁
하게 울려 퍼졌다. 그런 그들을 보며 시리안은 흡족한 듯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었다. 참으
로 오랜만에 보는 단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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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트닌 부단장은 어디 있는 건가?"
시리안의 물음에 안 그래도 조용하던 주변이 서늘하게 변했다. 우물쭈물하던 기사단원들
중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며 말을 전했다.
바람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에게 다다랐다. 지에트닌의
검집이 시리안의 얼굴을 파고들었다. 시리안은 강한 기세로 자신을 파고드는 그의 검집을
가볍게 옆으로 피하고는 양손으로 그의 복부와 얼굴을 향해 몇 차례 주먹을 날렸다.
바둑이사이트이 마을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었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기에 상인들의 주 거주지가 위치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것이 특징이라면 이 카르세인 마을의 특징일 것이다.
"그냥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지에트닌은 물론이거니와 시리안에게도 꽤나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저런 펜던
트를 누가 아무 대가도 없이 준 단 말인가.
"대가 없이는 이 펜던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시리안은 꺼려하는 눈빛으로 펜던트를 다시 주인에게 내밀어 거절했다. 주인은 펜던트를
재차 건네며 다시금 시리안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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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술집이었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대부분 용병들이 찾
아드는 술집. 대부분이 힘든 일을 많이 경험했고, 그 중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그
러하니 이런 그의 낭송에 가슴이 찡해오지 않을 수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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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잡이를 잡아 문을 염과 동시에 바깥과는 다른 환한 불빛이 스며 들어와 그의 눈을
잠시 찌푸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곧 그의 눈은 빛에 익숙해져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왕
실 도서관의 내부 배경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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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발목이 눈 속 깊이 빠져 힘든 발걸음을 하고 있는 그
는 남자였다. 185cm즘 되 보이는 훤칠한 키를 가지고 있는.
"하아……."
그의 입술을 타고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긴 은빛 머리칼이 차가운 바람을 타고 흩날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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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수척해졌지……. 내가 봐도 놀랄 정도라니까. 하하핫……."
"리안 너……"
"나는 괜찮아……. 네가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건지도 알고 있으니까. 걱정마. 이미 마음의
정리는 거의 다 됐으니까. 1주일……1주일 동안의 휴가 기간이 끝나면 생기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지. 전쟁에서 나 때문에 패배하는 일은 없을 거야."
걱정이 가득히 담겨있는 표정으로 위로를 하려던 지에트닌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그는 이
렇게 말했다. 그와 함께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지에트닌을 향해 살며시 웃음을 지어 보였
다. 그 웃음은 비록 생기가 없었지만 방금 전보다는 나아 보이는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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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써도 녹슬지 않을 만한 펜던트가 있을까요? 이 사진이 들어갈 만한……."
돋보기 안경을 끼고 나무 조각을 깎고 있던 잡화점 주인은 그의 말을 듣고 꽤 고심하는 듯
하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아마도 고급스러운 물건은 따로 진열해놓은 방이 있는 모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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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말로 못할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매서운 눈매……즉 냉랭해 보이는
이미지가 주위 숲의 배경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단 그것만이 그
에게서 매력이 느껴지는 이유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그는 보통의 미남들
을 충분히 상회할 정도로 아름다웠으니까.
그가 지금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시리안 레아크
린……수리엘 기사단의 단장이자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인 그를 말이다. 그것은 그의 갑옷에
새겨진 문양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수리엘 기사단의 부단장임을 입증하는 문양을 지니고
있는 자가 이리아 숲의, 그것도 그가 묵고있는 통나무집과 연결된 길을 따라서 걷고 있다면
이유는 그것 하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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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는 술이나 같이 한 잔 하지요."
"술이라면 나도 같이 하고 싶군. 그 때는 저도 같이 오도록 하지요."
술이란 얘기에 지에트닌은 중간에 끼어 들며 이렇게 말을 건넸다. 그는 전쟁이나 훈련 후
술을 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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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둘은 또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 갈 데도 없는 것 같은데 걸음을 옮기
는 시리안을 보며 지에트닌은 내심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또다시 두 눈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참으려 했지만 도저히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둘은 숨을 고르는 동안 주위의 단원들을 봐서라도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
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상대
방을 향해 몸을 날렸다.